주저리주저리

허준이 교수 서울대 졸업식 축사 감상

JoJobum 2022. 10. 3.

축사 영상 

(영상으로 보길 추천한다)

 

축사 전문 

 

안녕하세요, 07년도 여름에 졸업한 수학자 허준이입니다.

우리가 팔십 년을 건강하게 산다고 가정하면 약 삼만 일을 사는 셈인데, 우리 직관이 다루기엔 제법 큰 수입니다. 저는 대략 그 절반을 지나 보냈고, 여러분 대부분은 약 삼분의 일을 지나 보냈습니다. 혹시 그중 며칠을 기억하고 있는지 세어 본 적 있으신가요? 쉼 없이 들이쉬고 내쉬는 우리가 오랫동안 잡고 있을 날들은 삼만의 아주 일부입니다.

먼 옛날의 나와, 지금 여기의 나와, 먼 훗날의 나라는 세 명의 완벽히 낯선 사람들을 이런 날들이 엉성하게 이어주고 있습니다. 마무리 짓고 새롭게 시작하는 오늘 졸업식이 그런 날 중 하나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하루를 여러분과 공유할 수 있어서 무척 기쁩니다.

학위 수여식에 참석할 때 감수해야 할 위험 중 하나가 졸업 축사가 아닌가 합니다. 우연과 의지와 기질이 기막히게 정렬돼서 크게 성공한 사람의 교묘한 자기 자랑을 듣고 말 확률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겁이 나서, 아니면 충실하게 지내지 못한 대학생활이 부끄러워 십오 년 전 이 자리에 오지 못했습니다만, 여러분은 축하받을 만한 일을 축하받기 위해 이를 무릅쓰고 이곳에 왔습니다.

졸업식 축사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하면 좋을까요? 십몇년 후의 내가 되어 자신에게 해줄 축사를 미리 떠올려 보는 것도, 그 사람에게 듣고 싶은 축사를 지금 떠올려 보는 것도 가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당연하게 떠오르는 말은 없습니다.

지난 몇천 일, 혹은 다가올 몇천 일간의 온갖 기대와 실망, 친절과 부조리, 행운과 불행, 그새 무섭도록 반복적인 일상의 세부 사항은 말하기에도, 듣기에도 힘들거니와 격려와 축하라는 본래의 목적에도 어울리지 않을 것입니다. 구체화한 마음은 부적절하거나 초라합니다.

제 대학 생활은 잘 포장해서 이야기해도 길 잃음의 연속이었습니다. 똑똑하면서 건강하고 성실하기까지 한 주위 수많은 친구를 보면서 나 같은 사람은 뭘 하며 살아야 하나 고민했습니다. 잘 쉬고 돌아오라던 어느 은사님의 말씀이, 듬성듬성해진 성적표 위에서 아직도 저를 쳐다보고 있는 듯합니다.

지금 듣고 계신 분들도 정도의 차이와 방향의 다름이 있을지언정 지난 몇 년간 본질적으로 비슷한 과정을 거쳤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제 더 큰 도전, 불확실하고, 불투명하고, 끝은 있지만 잘 보이진 않는 매일의 반복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힘들 수도, 생각만큼 힘들 수도 있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어른입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하라. 편안하고 안전한 길을 거부하라. 타협하지 말고 자신의 진짜 꿈을 쫓아라. 모두 좋은 조언이고 사회의 입장에서는 특히나 유용한 말입니다만, 개인의 입장은 다를 수 있음을 여러분은 이미 고민해 봤습니다. 제로섬 상대평가의 몇 가지 퉁명스러운 기준을 따른다면, 일부만이 예외적으로 성공할 것입니다.

여러 변덕스러운 우연이, 지쳐버린 타인이, 그리고 누구보다 자신이 자신에게 모질게 굴 수 있으니 마음 단단히 먹기 바랍니다. 나는 커서 어떻게 살까, 오래된 질문을 오늘부터의 매일이 대답해줍니다.

취업 준비, 결혼 준비, 육아 교육 승진 은퇴 노후 준비를 거쳐 어디 병원 그럴듯한 일인실에서 사망하기 위한 준비에 산만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무례와 혐오와 경쟁과 분열과 비교와 나태와 허무의 달콤함에 길들지 말길, 의미와 무의미의 온갖 폭력을 이겨내고 하루하루를 온전히 경험하길, 그 끝에서 오래 기다리고 있는 낯선 나를 아무 아쉬움 없이 맞이하길 바랍니다.

오래전의 제가 졸업식에 왔다면 무슨 이야기를 해줘야 할까 고민했습니다만 생각을 매듭짓지 못했습니다. 그가 경험하게 될 날들이 안쓰럽기도 하고 가슴 먹먹하게 부럽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자신에게 선물할 어떤 축사를 떠올리셨을지 궁금합니다.

수학은 무모순이 용납하는 어떤 정의도 허락합니다. 수학자들 주요 업무가 그중 무엇을 쓸지 선택하는 것인데, 언어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가능한 여러 가지 약속 중 무엇이 가장 아름다운 구조를 끌어내는지가 그 가치의 잣대가 됩니다. 오늘같이 특별한 날 특별한 곳에서 특별한 사람들과 함께하니 들뜬 마음에 모든 시도가 소중해 보입니다. 타인을 내가 아직 기억하지 못하는 먼 미래의 자신으로, 자신을 잠시지만 지금 여기서 온전히 함께하고 있는 타인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궁금해집니다.

졸업생 여러분, 오래 준비한 완성을 축하하고, 오늘의 새로운 시작을 축하합니다. 서로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친절하시길, 그리고 그 친절을 먼 미래의 우리에게 잘 전달해 주길 바랍니다. 응원합니다.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주저리주저리

 

내가 인상 깊게 들은 부분을 볼드체하였는데 막상 볼드체 치고 보니 거의 대부분을 쳐버렸다

 

최근 대학교 생활의 마지막 장인 막학기 + 취준을 하면서 흐릿하던 내 미래, 커리어에 관련된 고민들이 점점 선명해지고, 흐릿해져 있는 사이 몸집을 잔뜩 불린 문제들이 내 가슴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가장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갈팡질팡하고 있다는 것이다. 도대체 내가 원하는 것이 뭘까... 뭘까... 사실 답은 알고 있다. 명예도 얻고 돈도 벌고 워라밸도 챙기고 싶은 말도 안되는 허황된 것을 원한다. 자신이 순수하게 일궈낸 것으로 앞서 말한 것을 성취해낸 사람은 정말 극소수일 것이다. 잘나서 돈과 명예를 얻는다 하더라도 워라밸은 챙기지 못하는 경우가 수두룩하니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저기서 결국 취사 선택을 해야하는데 그걸 못 고르겠다. 

현재 가장 큰 고민이 연봉이나 워라밸보다 커리어를 중점으로 보고 가야하나 아니면 커리어는 됐고 (현재로 보았을 땐) 안정적인 길로 가야하나 라는 것이다.  누가 합격은 시켜준다디?? 라는 냉소에 답하자면  나도 선택권이 있는지가 의문이라 우선 다 지원해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허준이 교수의 축사를 멘토해주는 형에게 추천받아 보았는데 감명 깊어서 기록하고 싶어서 이렇게 적어본다.

볼드체 친 각 부분마다 내가 느낀 점이 있지만 가장 감명받았던 부분을 꼽자면

 

이제 본격적으로 어른입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하라. 편안하고 안전한 길을 거부하라. 타협하지 말고 자신의 진짜 꿈을 쫓아라. 모두 좋은 조언이고 사회의 입장에서는 특히나 유용한 말입니다만, 개인의 입장은 다를 수 있음을 여러분은 이미 고민해 봤습니다. 제로섬 상대평가의 몇 가지 퉁명스러운 기준을 따른다면, 일부만이 예외적으로 성공할 것입니다.

여러 변덕스러운 우연이, 지쳐버린 타인이, 그리고 누구보다 자신이 자신에게 모질게 굴 수 있으니 마음 단단히 먹기 바랍니다. 나는 커서 어떻게 살까, 오래된 질문을 오늘부터의 매일이 대답해줍니다.

 

이 부분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하라, 편안하고 안전한 길을 거부하라, 자신의 진짜 꿈을 쫓아라 

아마 어릴 때 부터 대학교 졸업 전까지 왠만하면 한번쯤은 들어봤을만한 이야기다. TV, 유튜브 등 여러 매체에서 나오는 성공한 사람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담과 성공의 비결. 이런 이야기들이 불을 쫓아 달려드는 나방들을 만든다. 물론 이러한 것들이 전반적으로 사회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사회 구성원들이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발전하는 사회이기에, 하지만 결국 파이를 모두가 공평하게 나눠먹을 수 없는 법이고 1등은 2명이 될 수 없다. 그리고 성공한 사람들은 전체에 비해 소수인 것은 언제나 통용되는 이야기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동경하는 것이다. 쉽게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잔인한 현실을 이야기하면서도 이 이야기의 주제는 타협하고 살아라가 아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받아드렸다. 결국에는 내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라는 것은 10년 뒤엔 성공한 사람이 될거야! 하고 거창하게 정하는 것이 아닌 충실하게 보내는 하루 하루의 삶이 만드는 것이다. 그렇기에 당장 눈앞의 이벤트에 휘둘리지 말고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가면 결국에는 후회하지 않을 내 미래가 다가올 것 이라고 말한게 아닌가?... 라고 생각한다.

공부나 일이 아니라도 가족과의 시간이라던지 친구들과의 교류든 뭐든 내 행복을 찾아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며 마무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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